역사속에서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계엄령이라니… 2024년에?
그날 밤(2024년 12월 3일 밤 11시) 이후로 국민들에게 총칼을 들이밀며 자유를 앗아갈 것이란 생각에 겁이 났다. (최근 한강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끔찍한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급한대로 가족들에 전화하여 안부를 묻고, 비상 연락을 위한 수단을 협의했다. 그리고는 밤을 지새며 이 사태가 끝나기만을 두 손 모아 빌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 일은 잠들지 않았던 수 많은 시민들과 다수의 국회의원들에 의해 6시간 만에 저지되었다. 물론,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고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긴 했다.
그날부터 탄핵이 가결된 지금까지 이어지는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두려움으로부터 기인한다. 오늘 밤에 또 그 일이 벌어질 지 몰라. 아니 내일일까? 지금 또 새로운 속보가 나지 않았을까? 쉽게 잠에들지 못하고 침대 머리맡을 환하게 밝혔다.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 날, 교수님과 차를 마시며 이런 시대에 지식인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교수님의 답은(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지식인 개개인 역시 자신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교수님은 거기에 덧붙였다. 정의로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손해를 감수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그것은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일 수도 있을 것이며, 금전적인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며, 명예의 실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라는 기계는 자꾸만 엇나가려고 한다. 그걸 고장내려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우리나라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들과 오랜시간 싸우며 민주주의를 만들어왔기에 어떻게 목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었다. 평화적인 집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래서 계엄이 있었던 그 다음 날부터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나도 계엄이 있었던 그 주의 주말 집회에 참석했다. 부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가 있었나… 그 분위기는 마치 롯데 자이언츠 홈 경기가 있는 날 사직구장을 떠올리게 했다. (기사도 났었다.) 수 많은 시민들이 줄을 맞춰 앉아서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요 근래는 혐오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시대가 되어 이런 것을 느끼기 어려웠다.)
두 번째 주말인 어제(2024년 12월 14일 일요일) 집회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이제 집회에 도가 텄다. 사전에 집회 필수템 리스트를 공유하고, 기부금을 모아 사람들을 위한 핫팩과 음식들을 준비하고 나눴으며, 언제나처럼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 앉아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그날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국민들이 이겼다. 참 대단한 국민들이 아닌가?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몇 가지를 다짐했다.
첫째, 정의를 위해 나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의가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다면 반드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누군가는 정의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둘째, 정치는 나와 절대 무관하지 않으며, 한 명의 시민으로써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런 개개인들의 목소리가 모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게 될 것이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셋째, 정의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비단 거국정인 우리나라 정치에만 국한되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속해있는 연구자 집단은 굉장히 곪아있다. (가짜들이라고 표현했던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거대한 염증 역시도 정의를 인지했음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구성원들이 만들어온 것이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고 그 염증을 도려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개인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말이다.